청소년부

*노근리 민간인 학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저번주 주보와 영화 작은연못, 책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참고하세요

 

2015.1.24.일 인문학 강의 시간에 하상호 목사님과 함께 노근리 민간인 학살 현장에 다녀왔다. 노근리는 충청북도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해 있다. 노근리는 도로가 나고 철도가 놓였지만 여전히 시골이었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은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일어났다. 쌍굴다리는 위는 기찻길로 쓰이고 아래는 차도로 쓰이는 M자 모양의 터널이다. 지금도 위에는 기차가 지나다니고 아래는 차가 지나다닌다. 

처음 도착했을때 다리 주변에 무수히 많은 ○,△ 모양의 페인트 자국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 안은 파여있었다. 안에 파여진 자국은 미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데 쓰여졌던 총알의 흔적이 남아있는 총탄자국 이었다. 여기서 400~500명 가량되는 민간인이 총탄에 의해 희생당했다. 참혹한 학살이 일어났던 현장은 페인트로 표시만 되어있을 뿐 전혀 보존이 되어 있지 않았다. 전쟁 중 민간인이 군인들에게 학살당한 참혹했던 곳이다.  현장을 방치해 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이 장소가 가지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여기가 여전히 철도로, 도로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아쉽다는 생각을 가진 채 바로 옆의 노근리 평화 공원으로 이동했다.

평화공원에 들어서자 안내요원이 작은 상영관으로 안내해 주었다. 거기서 노근리 학살에 대한 짧은 영상을  봤다. 그 영상은 노근리 학살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짤막한 애니메이션과 실제 동영상을 통해 알려주었다.


그 영상에서 우는 아기를 조용히 시키라는 사람들의 성화에, 어린 아들을 굴 속 개울물에 밀어 넣어 죽이는 아버지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기가 우는 소리조차 위협이 되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영상을 다 보고 난 후에는 전시실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도 주로 영상으로 당시 노근리 학살이 어떠했는지 알려주었다. 전시실에서는 노근리 학살이 고의적인 학살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미국은 학살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이 학살이 고의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피난민들이 피난민으로 가장한 인민군인 줄 알았다는 주장만을 펼 뿐이다. 하지만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학살이 고의적이었다는 것을 증언했다. 짐검사를 통해 미군은 이 사람들이 무장상태가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폭격을 가했고 다리에서도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했다. 증언은 노근리 학살에 가담한 미국인에게서도 나왔다.
당시 사격에 가담했던 미군도 이 사람들이 민간인인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쏴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할 수 없이 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이 학살이 고의적이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노근리에 다녀오고 나서 기분이 복잡해졌다. 우리나라 정부가 적극 적으로 나서서 노근리 사건을자세히 밝히려 하지 않고 미국의 주장을 수긍하는 식으로 나갔기 때문이다.